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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기념관

한국 화약 발전사

고려시대

우리나라 화약사의 시작이 정확히 언제라고 말할 수 있는 학술적 근거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 단지 화약을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한 중국에 인접한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고려 중엽부터는 화약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우리 역사에서 화약에 관한 기록은 12세기부터 나타나고 있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고려 중엽인 숙종 9년(1104년)에 여진 정벌을 위해 설치한 별무반 중에 발화(發火) 부대가 있었음을 전하고 있다. 이어 인종 13년(1135년)에는 묘청의 난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포를 사용하여 성루를 부수고 화구(火丘)를 던져 공격했다는 기록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화약을 병기로 사용했다는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 다만 추정할 뿐이다.

화약이 실제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시기는 이보다 훨씬 뒤인 14세기 중엽이다. <고려사 병지(兵志)>에는 공민왕 5년(1356년) 총통을 사용하여 화살을 발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때 사용한 총통의 구조에 관한 설명은 없지만 당시 이미 고려인들이 유통식(有筒式) 화기를 보유하고 사용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리고 공민왕 22년(1373년)에는 왜구의 잦은 침입을 막기 위해 화약 공급을 명나라에 요청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들 기록을 통해 당시 고려는 화약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갖고 있었으며 실제 사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화약과 화기를 직접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우왕 3년(1377년)때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그 해에 고려는 화약과 화기 제조를 담당하는 화통도감을 설치했다. 당시 중국은 화약에 대한 모든 사항을 비밀에 부쳐 기술 이전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었다.

그러나 최무선의 노력으로 제조 기술을 습득하고 담당 관청의 설치, 운영을 주도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 화약과 화기의 시대가 비로소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최무선이 지휘하는 화통도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20여 종의 각종 화기를 개발했다. 그리고 화기 전문 부대인 화통방사군(火筒放射軍)이 편성되어 왜구와의 여러 전투에서 크고 작은 전과를 올리게 된다. 또한 기술적으로도 초기에는 화약을 장착한 화살류를 쏘는 화공용에서 점차 철탄자류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고려의 쇠퇴는 어렵게 꽃피운 우리 화약 및 화기 기술의 발전을 가로막게 된다. 특히 창왕이 1389년 화약 및 화기의 연구 개발과 제조 전담 조직인 화통도감을 군기시(軍器寺)에 통합시키면서 관련 기술의 발전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즉 왜구의 침입이 잠잠해지자 경비 절감을 이유로 화통도감의 인원과 위상을 줄이자는 조준의 상소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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