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과 성장
‘사업보국’의 창업이념으로
이루어 낸 한화그룹
한화그룹 창업주 현암 김종희 회장은 소비재 산업을 시작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산업발전의 근간이 되는 화약 사업을 통해 국가 재건에 기여하고자 1952년 한국화약(現 ㈜한화)을 설립하였습니다. 1955년, 폐허와 다름없던 인천 화약공장을 인수하고 복구하여 화약 국산화의 기틀을 마련했고, 1957년에는 니트로글리세린 시험생산에 성공하여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다이너마이트 생산에 성공하며 화약 국산화를 통한 국가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이후 기계, 화학, 에너지 등 기간산업 분야로 진출하며 국가 근대화와 공업화에 기여하였고, 금융과 서비스 레저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며 한국경제의 소프트화와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도 기여하였습니다. 우리나라 경제개발에 맞추어 시대에 요구하는 사업을 전개하며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다해온 한화는 현재에도 ‘사업보국’의 창업정신을 계승하여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핵심 산업영역에서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事業報國
현암 김종희
불꽃 더 큰 빛으로:
한화그룹 창업주 현암 김종희
“창조적 도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누구도 가지 않은 불모지를 개척했던 한화그룹 창업주 현암 김종희 회장의 삶과 업적이 응축된 말입니다. 현암이 품었던 불꽃은 전쟁 폐허 속에서 대한민국을 일으킨 거대한 힘이 되었고, 여전히 우리에게 꺼지지 않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1922년 현암이 태어난 충청남도 천안군 부대리는 척박한 빈촌이었습니다. 고등교육을 받는 것이 사치였던 시절, 현암은 자신의 의지로 학업에서 길을 찾고 의연한 조선인으로 살겠다는 의지를 다졌습니다. 현암에게 화약은 운명처럼 다가왔습니다. 때로는 생명조차 담보로 해야 했던 고독하고 척박한 사업이었지만 현암은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화약계를 지키는 등대수를 자처했습니다. 전란 속에서 화약고를 지켜내고 마침내 국산 다이너마이트 생산을 이뤄냈습니다. 현암이 지켜낸 불꽃은 국가 기간산업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기계, 중화학, 정유, 건설, 무역, 금융 산업에서 화려한 불꽃을 피웠습니다. 현암은 사업보국의 철학을 잊지 않았습니다.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국가에 필요한 사업에 진출했고, 국민의 삶에 필요한 일이라면 어려움이 있더라도 묵묵히 수행했습니다. 예기치 않은 시련 앞에서도 불꽃의 마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리역 폭발사고 당시 전 재산을 헌납하여 국가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불꽃을 피워야 하는 화약의 정직함으로 책임과 소임을 다했습니다. 세상을 빛낼 소중한 인재를 키우는 일은 현암이 가장 사랑한 과업이었습니다. 학업, 스포츠, 문화예술 분야에서 뜻과 재능을 가진 청소년들이 열정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저물지 않는 교육의 터를 만들었습니다. 현암의 불꽃 같은 창조적 도전은 한화의 DNA로 자리잡았습니다. 국가와 국민, 인류의 번영을 위한 담대한 도전의 원동력이 되었고, 실패와 시련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의 원천이 되었으며, 오늘의 이익보다 내일의 가치를 먼저 생각하는 혁신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쉬운 길, 빠른 길 보다 정직한 길을 걷겠다는 굳건한 약속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불꽃의 여정은 또 다른 100년의 장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한화가 열어가는 모든 도전과 혁신의 순간에 현암의 불꽃이 함께 할 것입니다. 위대한 기업인을 넘어 시대의 등불이 된 현암 김종희 회장. 현암의 불꽃은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세대를 넘어 시대를 넘어 더 큰 희망과 빛으로 우리와 함께할 것입니다. 창업주 현암 김종희 회장의 업적과 생애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현암기념관에서 관람 할 수 있습니다. 주소 : 서울 중구 서소문로 125 현암기념관 관람 문의 : 02-757-9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