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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기념관

전쟁에 얽힌 화약 이야기

중국 몽고군의 원정 크레시 전쟁 오스만 터키
희랍의 불 아랍지역의 화약 후쓰파 전쟁 영국과 스페인
오스만 터키

오토만 터키(Ottoman Turk) 역시 화약병기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했다. 화약병기의 선구자였던 후쓰파가 몰락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1453년 터키의 군주 모하메드 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고 있었다. 오래 전 희랍의 불을 사용하여 아랍군을 격퇴한 이래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지만 석축으로 요새화된 콘스탄티노플은 쉽게 함락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드디어 1420년 여름 지즈카는 독일군에 대항하기 위해 프라하로 진군했다. 이 때 동원한 각종 화포는 역사상 최초로 네 바퀴 수레에 장치하였는데 이동할 때의 번거로움과 발사 시의 반동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모하메드 2세의 터키군은 사상 최대의 화포부대를 동원해 콘스탄티노플의 성벽 앞에서 공격을 위한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이 때 터키군이 동원한 화포는 대소 구경을 모두 합하면 69문에 달하였는데 이중 13문은 반톤 이상의 석탄을 발사할 수 있는 육중한 대포였다. 지금도 이스탄불의 터키 박물관에는 이 무렵에 제작되었던 것으로 알려진 지름 46인치짜리 석탄 2개가 전시되어 있는데 이 석탄을 보면 당시 화포의 규모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전쟁에 투입된 바실리카(Bacilica)라는 대포는 '화약병기 사상 최대의 괴물'로 알려진 초대형 화포였다. 이를 적재했던 썰매는 60필의 황소가 끌어야했으며 이동 중에는 넘어지지 않도록 떠받치기 위해 200여명의 군인과 다수의 가축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200여명이 삽이나 괭이를 들고 도로를 정지하지 않으면 화포의 행렬이 지나갈 수 없었다. 또한 바실리카의 뒤에는 발사수가 비단으로 장식한 아랍산 말을 타고 따랐으므로 이 거대한 괴물의 행차는 언제나 일대 장관이었다. 드디어 전열이 갖추어진 4월 6일 해 뜰 무렵 모하메드 2세의 신호에 따라 수백 개의 북이 울리면서 80,000명의 터키 군은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한달 반이 지난 5월 29일 터키군은 콘스탄티노플 성내로 진입했으며 모하메드 2세는 화포에 의한 승리를 맛볼 수 있었다.

이 때 사용한 소형 화포는 어느 정도의 연속 사격까지 가능하였지만 대형의 경우에는 발사 준비를 위해 2시간 이상이 걸릴 정도로 조작이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싸움은 화약병기가 실용화되던 초기에 전개되었던 최초의 본격적 포격전이였으며 괴물스러운 대포의 뇌성과 섬광이 봉건체제의 붕괴를 촉진시킨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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