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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기념관

전쟁에 얽힌 화약 이야기

중국 몽고군의 원정 크레시 전쟁 오스만 터키
희랍의 불 아랍지역의 화약 후쓰파 전쟁 영국과 스페인
신화속의 화약 병기들

유럽 등지에서 흑색화약의 효시로 생각하는 발화제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적인 이야기나 기록들이 전해온다. 멀리는 기원전 1190년경에 있었던 트로이 전쟁에서 트로이군이 그리스 함대를 "꺼지지 않는 불"로 격파하였다는 설화가 있다. 그리고 기원전 4세기(BC 410-304년)경에는 스파르타 동맹군이 시라쿠사(Syracusa, 시실리) 등지의 싸움에서 소이제를 사용한 사실이 전해지고 있다. 황, 피치, 송진을 충전한 발사물을 투척기로 발사해 아테네 함대에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고대의 그리스나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이와 유사한 소이제를 화공용으로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간간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런 기록들은 다분히 신화적인 측면이 강하고 실재하였던 사실로 믿기에는 어려운 내용들이다.

그러나 기원 후 226년 로마제국의 알렉산터 6세는 메소포타미아에 침입한 페르시아군과의 전쟁에서 자동화(自動火)라고 부르는 화기를 사용하였다. 자동화는 생석회와 아스팔트의 혼합물을 충전한 환상용기에 소량의 물을 주입시켜 발화시키는 화기였다. 이때부터 로마군은 피치, 황, 송지, 나프타(Naphtha) 등의 가연제와 생석회를 혼합한 다양한 형태의 소이제를 여러차례의 전쟁에 사용하였다.

초기에는 나무로 만든 적진의 성벽이나 적선에 접근하여 손으로 투척하는 방식이었다. 이어서 간단한 구조의 투척기가 등장하면서 얇은 철제 용기에 소이제를 충전한 다음 높은 이동식 포좌에서 적진으로 굴리거나 적선으로 발사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비잔틴 제국을 지켜낸 '희랍의 불'

그 후 발화제는 조성이나 용법에서 많은 발전을 거듭하면서 7세기로 이어졌다. 이 무렵 로마제국은 동서로 분열돼 로마를 수도로 하는 서로마제국과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하는 비잔틴제국이 양립하고 있었다.

비잔틴제국은 7세기 중에 수차례에 걸쳐서 사라센군의 침공을 받으면서 수도인 콘스탄티노플마저 공격을 받았다. 이 때 비잔틴제국의 왕이었던 콘스탄틴 4세(668-685년)의 영웅적인 항전과 '희랍의 불(Greek Fire)'이라는 새로운 화기 덕분에 수도만은 지켜낼 수 있었다. 이 때 사용한 희랍의 불은 아라비아 태생으로 비잔틴에 귀화한 칼리니코스(Kallinikos)가 종래의 소이제를 더욱 실용적으로 개량한 화공무기였다.

그는 원래 연금술과 건축 기술을 갖고 있던 기술자로 콘스탄틴의 요청에 따라 비밀리에 희랍의 불을 연구했다고 전해진다. 피치나 황과 같은 가연성 물질을 군사용 화공 목적에 사용한 것은 매우 오래된 일이지만 본격적인 화공무기로 등장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위력도 대단히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실제로 오랜 고전 끝에 희랍의 불로 승리하였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병술가 레오(Leo, 717-741년)는 자신의 병서에서 당시의 전투 광경을 기술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사라센 함선을 향하여 방화용 관을 가설한 다음 희랍의 불을 발사하면 심한 연기를 뿜으면서 폭뢰와 같은 소리를 냈다. 그리고 희랍의 불은 발사된 상태에서 꺼지지 않고 계속 연소했기 때문에 적선에 낙하하면 완전히 소각되었다. 또한 연소중인 희랍의 불은 통상적인 진화 방법처럼 물을 부어서는 꺼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맹렬하게 타올랐다. 레오는 발사식 외에도 적병의 면전에 손으로 투척하여 화상을 입히는 소형의 수동 사이폰(Kheirosiphones)식의 희랍의 불도 사용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희랍의 불'을 응요한 화공무기들

희랍의 불을 모방하거나 개량한 여러 가지 형태의 소이제를 화공무기로 사용한 기록들이 전해 온다. 특히 콘스탄티노플전쟁의 당사국이었던 사라센군은 813년 내란이 터지자 희랍의 불과 비슷한 발화제를 사용해 바그다드 시가를 태워버렸다. 그리고 904년 사라센군이 그리스를 공격하였을 때도 피치, 황, 생석회 등의 혼합물을 도자기통에 넣어서 투사하였다고 전해진다. 또 11세기 십자군 원정 때 이슬람군은 니스(Nice)의 전투에서 피치와 유지탄을 사용하였으며 예루살렘의 성벽에서는 발화제를 장착한 화전을 발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비잔틴군이 941년 콘스탄티노플을 침공한 러시아군에 대항해 나프타, 생석회, 황의 혼합물로 된 '바다의 불(Sea Fire)'이라는 발화성 액체를 관이나 사이폰(siphon)으로 발사해 러시아 함대를 소각시킨 기록도 전해온다.

'희랍의 불'의 요소

'희랍의 불'이나 다른 발화제들이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에 관한 당시의 자료는 발견할 수 없는 상태이다. 다만 뒷날 희랍의 불에 관한 신비를 재조명하면서 배합성분이 일부 밝혀지게 된다. 희랍의 불에 대한 연구에서는 영국의 대과학자였던 로저 베이컨이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그는 여러 가지 사료와 객관적 실험을 통해 '희랍의 불'은 연소성의 황이나 숯, 나프타나 피치, 타르(Tar)와 같은 석유계 화합물, 물을 가하면 맹렬히 끓으며 발화하는 생석회 그리고 단정하기 어려운 미지의 물질이 배합되어 있는 혼합물이라고 주장하였다. 생석회를 배합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희랍의 불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영국의 하임 (H.W.L. Hime) 중령도 그의 저서(Gunpowder and Ammunition, 1904)에서 공감을 표한 바 있다.

어쨌든 생석회를 함유한 희랍의 불은 화염에 의해 쉽게 발화될 뿐 아니라 물을 부어도 생석회가 흡수하면서 발생되는 막대한 열 때문에 불이 붙는다. 따라서 연소 중인 희랍의 불을 끄려고 물을 부으면 더욱 격렬하게 연소될 뿐이다.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던 사라센군은 이런 원리를 전혀 알지 못했고, 상식에 따라 물로 진화하였기 때문에 그 피해는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희랍의 불'에 들어간 미지의 성분

로저 베이컨은 희랍의 불에 배합된 미지의 한 성분은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초석(질산칼륨, KNO3)이나 칠리초석(질산나트륨, NaNO3)이었을 것으로 추측하였다. 또 1250년경 마커스 그레커스(Marcus Graecus)가 저술한 처방집(Liber Igmium)에도 희랍의 불에는 초석이 배합되었다고 적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희랍의 불은 송진 1, 황 1 및 초석 6의 비율로 된 혼합물을 석유나 아마인유(亞麻仁油) 등에 분산시킨 니상(泥狀)물이다. 그러나 당시의 희랍이나 유럽에서 초석류를 생산하였다는 기록은 전혀 찾을 수가 없으며 희랍의 불에 초석이 포함됐는지에 관해서는 그 후 학자들간에 논란이 됐었다. 희랍의 불에 초석이 들어 있었다면 이것은 사실상 흑색화약을 의미하며 따라서 희랍의 불은 발화제나 소이제라기보다는 폭발물이 되기 때문이다.이에 따라 현재는 희랍의 불에는 초석류가 배합되어 있지 않으며 피치 같은 석유계 화합물 가연제에 생석회가 배합된 발화제라고 보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유럽지역에서 흑색화약이 실용화되기 얼마 전부터는 희랍의 불 같은 발화제에도 초석이 부분적으로 배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의견이 강하다. 왜냐하면 유럽 지역의 초석류에 관한 최초의 기록으로 인정받고 있는 아랍의 한 의약서에서 초석을 중국의 눈(Chinese Snow)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이 1200년을 전후에 발행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흑색화약이 제조된 13세기에는 초석의 사용이 보편화되었다는 점도 그 이유로 꼽히고 있다. 어쨌든 오랫동안 사용됐던 희랍의 불은 유럽권에서 개발된 흑색화약의 원형에 속하는 소이제이며 로저 베이컨에 의해 흑색화약이 재발명되는 매개제의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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