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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기념관

화약의 기원

  • 불로장생과 화약
  • 중국 의약서 속의 화약
  • 중국의 흑색화약
  • 로저 베이컨과 '희랍의 불'
  • 중국화약의 유럽 전파설
중국의 흑색화약

송의 이방등(李坊等)이 편집한 고대 중국의 설화집인 <태평광기>(太平廣記)에는 후한의 순제(順帝·125-144) 때에 있었던 설화가 실려 있다. 단약을 만드는 어떤 방사의 집에 두자춘이 방문했으나 마침 방사가 볼일이 있어서 외출 중이었다. 그래서 두자춘이 단약로의 옆에서 졸고 있었는데 단약로에서 큰 불이 일어나 화염이 지붕까지 미치면서 집이 불타버렸다고 했다. 이런 설화만으로 당시의 방사가 단약의 제조에 초석을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부의 학자들은 이 때의 발화를 초석의 산화 작용에 의한 자연발화 또는 폭발로 해석하고 있다.

그 후 당의 초기인 618년에 손사막(孫思邈)이 저술한 <복화유황법>에는 초석 등의 3미혼합물을 가열한 실험 내용이 수록돼 있다. 즉 잘게 빻은 같은 양의 초석과 황을 은제 용기에 담고 여기에 쥐엄나무 열매를 넣은 다음 가열하면서 저어주면 자연 발화해 연소한다. 불이 꺼질 무렵에 목탄을 가하고 다시 가열해 1/3 정도로 줄면 그친다고 했다.

그리고 당 말인 헌종 3년(808)에 기술된 청허자(淸虛子)의 <연홍신진지보집성(鉛汞申辰至寶集 成)>이라는 책에는 같은 양의 초석과 황의 혼합물에 바곳(부자)을 가한 다음에 가열했더니 발화하면서 연소했다는 복화반법(伏火礬法)이 소개돼 있다. 이것은 손사막의 실험과 사실상 동일한 것으로 쥐엄나무 열매나 바곳, 꿀은 모두가 탄소질이며 가열하면 탄화되어 목탄으로 변하는 물질이다. 따라서 초석, 황, 탄소질(목탄)의 혼합물은 가열할 때 발화되며, 황이나 목탄이 초석의 산소공급작용에 의하여 연소하는 현상을 관찰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여러 가지 기록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미 화약의 발명에 필요한 여건은 성숙돼 있었던 셈이다. 화약의 효시인 흑색화약의 세가지 성분인 초석, 황, 목탄이 배합된 혼합물의 강력한 연소 작용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화약학적 의미의 폭발현상에 대해서는 어떤 기록에서도 발견할 수가 없는데 이는 당시의 실험들이 거의 언제나 초석과 황을 같은 양으로 사용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만약 당시의 실험에서 이 세 물질의 배합비율이 현재 폭파용에 사용하는 흑색화약(표준비율: 초석75-황10-목탄15)과 유사했다면 폭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초석이 귀했고 폭발에 관한 이론이 없었으므로 초석의 배합비를 높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미 중국에서는 2-7세기 경에 흑색화약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초석, 황, 목탄의 혼합물을 실험하고 있었으며 이의 연소 성능도 확인했다. 그리고 흑색화약이 언제 누구에 의해 발명되었다거나 어떤 경우에 폭발 현상이 있었다는 구체적인 기록이 없는 상태에서 이미 화약이 실용화되었다는 자료들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흑색화약은 장기간의 실험과정에서 무작위적으로 발명되었으며 필요에 의해서 부분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가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이 가설은 여러 학자들이 공감하고 있지만 발명 시기에 관해서는 약간의 이론이 따른다. 예를 들어 일본의 남방평조(南坊平造)는 태평광기와 몇 가지 가상에 의거해 흑색화약이 125-144년 사이에 발명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는 <태평광기>에 소개된 설화에서 연단을 제조하던 방사가 초석과 황, 목탄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가정 아래 사실상의 흑색화약이 출현했다고 보았다.

반면 중국의 조철한은 흑색화약이 동진시대(264-322)에 정사원에 의해 발명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중국의 마가승은 흑색화약이 당대(618-907)에 이르러 출현한 착화성이 있는 약의 형태로 발명되었다고 가정했다. 이런 여러 학설들을 종합해 보면 흑색화약의 원형은 당나라 초기인 7세기 경에 발명되었으며 이 때부터 서서히 화약으로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즉 초기의 화약은 연소성능에 의존하는 수준이었으나 점차 폭발성을 갖는 조성이 개발되고 이의 사용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즉 조성에서는 초석의 배합량을 늘림으로써 화약의 성능이 향상되었고 용도에서는 폭죽이나 군사적 목적에 응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당나라 말기인 9세기 전후에 이르러서는 흑색화약을 사용한 화약무기와 연화가 여러 사료에서 발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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