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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기념관

전쟁에 얽힌 화약 이야기

중국 몽고군의 원정 크레시 전쟁 오스만 터키
희랍의 불 아랍지역의 화약 후쓰파 전쟁 영국과 스페인
코스탄티노플 패전으로 화공무기 등장

일반적으로 유럽 등지에서는 13세기에 흑색화약이 발명되어 14세기경부터 화포가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랍의 경우 유럽보다 앞서서 흑색화약과 이를 이용한 화기를 전쟁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기록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8세기경 아랍의 모든 주변지역을 석권한 강국인 사라센(Saracen)제국이 673년부터 678년까지 비잔틴의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했을 때만 해도 화약성 화기는 보유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라센군이 긴 싸움에서 그리스군이 사용한 희랍의 불에 의해 고전을 하면서도 화공무기로 공격한 사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년 후인 683년 메카전에서는 시리아군이 소이제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사라센 제국의 분열로 내전 중이던 813년에는 적군이 발사한 화기에 의해 바그다드 시가지가 불타버렸다는 자료가 있다. 그리고 904년 사라센이 살로니카(Salonika)를 공격했을 때는 소이제 가루가 충전된 도자기를 투사하였다. 이것은 피치, 송지, 석회석이 배합된 혼합물로 사실상 희랍의 불과 같은 성분이며 이를 뒤집어쓴 병사들은 질식하였다. 이처럼 장기간 동안 사용되지 않던 화공무기가 아랍 지역에서 다시 사용된 배경에는 사라센의 콘스탄티노플 패전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화공무기의 실용성을 깨달은 아랍에서 이를 다시 개발했거나 희랍의 불을 모방하여 전쟁에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어서 십자군의 1차 원정 때의 니스전(1096-1099년)에서도 사라센군은 피치와 유지탄(油脂彈)을 사용하였으며 예루살렘의 성벽에서는 피치, 황, 마(麻)조각 등을 붙인 화살에 불을 붙여 쏘았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에서 패전한 직후부터 압바스(750-1218년) 왕조의 사라센군에는 석유투척부대(Nafftum)가 편성돼 점화된 석유를 적진에 방사하였는데 부대원들은 방화복을 착용했다는 기록도 전해 온다.

몽고군과 화약 정보

아랍지역에서 최초로 화약병기가 사용된 것은 1219년 몽고의 서방 원정 당시 1차 목표가 됐던 중앙아시아 지방의 호라즘을 공격할 때였다. 그리고 1258년 몽고군이 바그다드를 침공할 때 철병이라는 진천뢰를 사용하면서 아랍권은 본격적인 화약 병기와 접촉하게 된다. 당시까지는 유럽과 마찬가지로 아랍지역도 화약이나 화기에 관해 알지 못하다가 전쟁을 통해 비로소 화약기술에 관한 정보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몽고군의 침입 이전에도 뢰화나 '희랍의 불'과 같은 화약성 전쟁무기가 사용되었다고 전해지지만 이들이 화약류에 속한다는 사료 는 없는 상태이다. 그리고 일부 기록에 의하면 1147년에도 아랍인이 스페인의 이베리아에 대해 화기를 사용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몽고의 침공 이후 몽고군의 화기를 모방해 제조한 화약병기들이 아랍 지역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13-14세기경에 쓰인 아랍의 병서들에는 몽고를 지칭하는 계단화창(契丹火槍)과 계단화전의 그림이 실려 있다. 그 중 1285-1295년(일설에는 1280년) 사이에 시리아의 최고 병술가였던 알핫산 알라마(Al-Hassan Al-Rammaeh)가 쓴 병서가 가장 대표적인 자료로 꼽히는데, 이 책에는 "스스로 날면서 연소하는 달걀(Self-moving and combusting egg)"에 관한 그림과 해설이 실려 있다. 초기형 로켓의 일종인 '연소하는 달걀'은 2개의 냄비를 포개놓은 구조로 뒤쪽에 꼬리 같은 2개의 긴 막대를 달아 비행 중 궤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원리를 채택하고 있다.

이 무기는 몽고군이 사용하였던 비화창을 모방하여 아랍에서 만든 최초의 로켓이라고 판단된다. 그리고 지금 소련의 레닌그라드 박물관에 있는 마드파(Madfa)의 그림에서도 몽고군의 화기를 모방한 사실이 확인된다. 마드파라는 화기는 외경 17cm, 내경 15cm, 길이 30cm 정도인 원통에 화약을 넣고 통구에 석구나 철구와 같은 탄환을 장입한 형태이다. 사용하는 탄환의 지름은 약 15cm이며 장약하는 화약량은 5kg 정도로 이것을 발사통에 장전한 다음 점화한다고 아랍의 병서에 기록돼 있다. 그리고 마드파는 짧은 발사통에 석구를 사용하는 제1종과 장통에 철구 또는 철병을 발사하는 제2종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철병이 몽고군이 사용한 진천뢰를 모방하여 만든 폭탄인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같은 수준의 화약 병기는 사실상 오늘날의 화포와 동일한 구조로 화약기술이 상당히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무어인의 화약 사용기록

한편 몽고군의 침공을 받던 기간에 해당되는 1259년에는 북아프리카의 무어인이 스페인의 니브라(Nibra)에서 투사기로 오물과 돌을 발사했는데 이 때 뢰화를 동반하는 발사물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같은 해에 모로코의 메릴라(Melilla)전에서도 무어인이 가농포(Cannon)와 함께 화기를 사용하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으나 확실한 내용을 알 수는 없다. 이에 관해 일부에서는 일종의 소이제를 노포(弩砲)로 쏘았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 밖에도 아랍인이 '불타는 석탄'(Firing Stone)을 사용하였다는 기록도 전해 온다.

이처럼 아랍에서도 14-15세기경에는 유럽과 보조를 같이 하며 본격적으로 각종 화약병기를 여러 전쟁에서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료들을 살펴보면 아랍 지역이 유럽보다 앞서 화약병기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아랍지역이 유럽보다 문화와 과학 수준이 앞섰던 까닭도 있지만 화약의 발상지인 중국과 이전부터 교역을 해온 점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랍은 일찍부터 해상을 통해 중국과 문물교류를 해왔으며 특히 13세기에는 남송과 거래가 매우 활발하였다. 이 때문에 남송의 광주나 호주 등지에는 아랍인을 위한 거류지가 마련되어 있었으며 이들에 의해 중국의 화약기술이나 연화가 수입된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1248년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에서 사망한 이븐 알바이타르(Ibn al Baythar) 가 자신의 의서에서 흑색화약의 주원료인 초석을 '중국의 눈(Chinese Snow)'이라고 소개하면서 제조법까지 설명한 것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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