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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기념관

화약 기네스북

로저 베이컨 최초의 로켓 사상 최초의 포격전 최초의 무연 화약
최초의 화약병기 최초의 화포 베르톨레 화약 기네스로 보는 불꽃
로저 베이컨

흑색화약이 고대 중국의 연단술에서 비롯됐다는 점은 이제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유럽 일부에서는 르네상스 초기에 영국의 로저 베이컨이 최초로 흑색화약을 발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로저 베이컨은 프란체스코 교회 소속의 수도승으로 사상가이자, 과학자였다. 그는 철학을 비롯한 수학, 천문학, 화학, 물리학, 의학 등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는 전설로만 전해오던 고대 '희랍의 불'을 과학적으로 재현했다고 알려졌다. 바로 이 연구과정에서 목탄과 황의 혼합물에 초석을 배합하면 폭발적으로 연소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가 만들었다는 화약에 흑색화약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목탄 가루가 배합돼 있어서 혼합물의 색이 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이컨의 흑색화약 발명과 관련된 초기의 자료에는 전설적인 성격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진위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최초의 로켓

아랍에서 만든 최초의 로켓은"스스로 날면서 연소하는 달걀(Self-moving and combusting egg)"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무기였다. 이 로켓은 2개의 냄비를 포개놓은 구조로 뒤쪽에 꼬리 같은 2개의 긴 막대를 달아 비행 중 궤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원리를 채택하고 있다. 이 로켓은 몽고군의 침공 당시 이들이 사용했던 비화창을 모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상 최초의 포격전

1453년 인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의 전쟁을 목격하게 됐다. 오토만 터키의 군주 모하메드 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포격전을 전개했다. 석축 요새였던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는 데 오토만 터키가 동원한 화포는 대소 구경을 모두 합해 69문이었다. 이중 13문은 반 톤 이상의 석탄을 발사할 수 있는 육중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 전쟁에 투입됐던 바실리카(Bacilica)라는 대포는 '화약병기 사상 최대의 괴물'로 알려질 정도로 크기가 엄청났다. 이 대포를 운반하는 데만 60필의 황소가 필요했고 이동 중 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200여명의 군인과 다수의 가축이 동원돼야 했다.

그리고 200여명이 미리 도로를 정지하지 않으면 화포가 지날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이 전투에서 터키군이 사용한 소형 화포는 어느 정도의 연속 사격까지 가능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형의 경우에는 발사 준비를 위해 2시간 이상이 걸릴 정도로 조작이 힘들었다. 어쨌든 이 싸움은 화약병기가 실용화되던 초기에 벌어진 최초의 본격적 포격전이였으며 봉건체제의 붕괴를 촉발시킨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최초의 무연 화약

1884년 프랑스의 비에이유가 역사상 최초로 교질상의 무연화약을 발명함으로써 탄도학 분야는 획기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 많은 화학자들이 면화약을 발사약으로 사용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무도 면화약의 빠른 연소속도를 통제할 수 없었다. 면화약은 화기에도 예민하고 자연분해에 따른 열의 축적에 의해서도 쉽게 폭발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더욱이 연소 속도가 빨라 포열이 파열돼 우수한 성능을 갖고 있었지만 발사약으로 사용하기에는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1884년 비에이유는 면화약을 에테르-알코올에 용해해 교질화 시킨 다음 성형하는 방법을 써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B-화약이라는 이름이 붙은 비에이유가의 무연화약은 즉시 프랑스 정부에서 군용 발사약으로 채용했고 그 뒤 영국 등에서도 코다이트와 같은 무연화약이 등장하게 됐다. 그가 만든 무연화약은 오늘날의 단기 무연화약에 해당되며 지금까지 소화기용 추진약으로 사용될 정도로 뛰어난 성능을 갖고 있다.

최초의 화약병기

아랍 지역에서 최초로 화약병기가 사용된 것은 1219년 몽고의 서방 원정 때였다. 당시 몽고는 중앙아시아 지방의 호라즘을 서방 원정의 1차 공격대상으로 정했다. 바로 이 전투에서 몽고군은 화약병기를 사용해 아랍 지역에 화약 무기를 전했다. 이후 몽고군이 1258년 바그다드를 침공할 때는 진천뢰가 사용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몽고군의 침공을 계기로 아랍지역에서는 몽고군의 화기를 모방한 화약병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13-14세기경에 쓰인 아랍의 병서들에는 몽고군의 계단화창과 계단화전 등의 그림이 실려 있기도 하다.

최초의 화포

유럽에서는 1346년에 일어난 영국과 프랑스간의 크레시(Crecy) 전쟁에서 화포가 최초로 사용됐다. 이 전쟁은 왕권을 확립한 영국의 에드워드 3세가 세력권의 확대를 위해 유럽 본토의 프랑스를 침공하면서 일어났다. 에드워드 3세는 새로운 무기의 개발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는데 유럽 여러 나라 중에서 제일 먼저 화포의 실용화에 착안한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그가 제작한 화포의 규격이나 용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진유로 만든 목이 좁고 긴 화병 같은 모양이었다는 사실 정도만 전해 오고 있다. 이 화포는 조작이 불편하고 성능도 우수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발사 준비를 위한 화약 장전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고 명중률도 너무 낮아 특정 목표물을 겨눌 수도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크레시 전쟁에서는 대부분의 화약이 습기를 먹어 목표 거리에 미치지도 못했기 때문에 살상 효과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화포에서 나오는 화염과 뇌성은 전세의 향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정도로 프랑스 군들을 겁에 질리게 했다. 어쨌든 이 화포는 무기 자체로서는 보잘 것 없었지만 크레시 전쟁에 투입됨으로써 역사상 최초로 실용화된 화약병기가 되었다.

베르톨레 화약

▲ 클로드 루이 베르톨레(1748~1822)

수백 년 동안 유일한 화약으로 군림해 왔던 흑색화약은 1788년 베르톨레 화약이 등장하면서 빛을 잃었다. 프랑스의 화학자였던 베르톨레는 황과 목탄에 염소산칼륨을 배합함으로써 종전의 흑색화약보다 위력이 강하고 폭발이 쉬운 새로운 폭약을 발명했다. 그가 처음 시험제조한 화약의 기본 조성은 염소산칼륨 75, 황과 각각 12.5의 비율로 흑색 화약의 초석 대신 염소산칼륨을 배합한 것이었다. 그러나 염소산칼륨이 너무 예민했기 때문에 제조법 및 사용법까지 연구됐지만 끝내 실용화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베르톨레는 자신이 발명한 화약에 자기의 이름을 붙이고 시제품 제조까지 착수했지만 염소산칼륨 폭약의 분쇄 혼합 과정에서 폭발사고가 나면서 그의 공장 건설 계획은 좌절되고 말았다. 하지만 베르톨레 화약은 새로운 발상으로 흑색화약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화약분야에 신기원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대 크기의 불꽃은?

1988년 7월 토야호수페스티벌에서 발사된 Universe Ⅰpart Ⅱ로 화약 무게 1.543파운드에 폭발 수 지름이 3,937 피트였다.

가장 긴 폭죽 불꽃은?

1988년 2월 말레이시아의 관광행사 도중 선보인 불꽃으로 전체 3,338,777개의 폭죽으로 이뤄졌으며, 총 길이가 18,777 피트 1,468파운드의 화약을 사용, 9시간 27분 동안 지속됐다고 한다.

최대 크기의 연화는?

연화의 크기는 지름이 1미터 20센티미터(48인치)가 넘는다. 일본 니카타에서 매년 9월 9일에서 10일에 열리는 카타카이 마츠리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것으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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